요즘 기업교육 트렌드를 살펴보면 무엇보다 AI가 눈에 띕니다. 이번 atd 2024에서도 ChatGPT를 필두로 생성형 AI가 핵심적인 키워드로 떠올랐습니다. 그 밖에도 기술 기반의 학습 경험 설계(Learning Experience Design)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People Analytics는 최근 몇 년간 HR 전반에 걸쳐 가장 주목받는 분야일 것입니다. 바야흐로 HR 역시 기술이 주도하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대 기술의 시대에, ‘신뢰’는 너무 고전적이고 좀 상투적인 주제라고 느끼시는 분들도 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최근 조직에서 리더십 개발 업무에 집중하면서, 결국 리더십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신뢰라는 점을 더 깊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리더십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다양한 모습이 관찰됩니다. 재미있게도 리더의 타이틀을 달고 있다고 해서 항상 팀원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리더의 자리를 차지한 사람보다 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팀원이 있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은 직급에 따른 위계가 강한 조직에서도 종종 발생합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리더’라는 이름에 걸맞는 신뢰를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신뢰를 일종의 자산으로 본다면 충분히 자산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죠.

사실 HR, 리더, 구성원 모두 이런 신뢰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조직 내의 신뢰 수준을 높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전세계 30개 회사의 관리자 450명을 대상으로 한 Hurly의 2006년 통계에 따르면 대략 절반 정도가 자신의 리더를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이런 경향은 시간이 지나도 비슷했는데요. 언스트앤영(Ernst & Young)이 실시한 2018년 글로벌 조사에 따르면 회사를 신뢰하는 조직원은 절반도 되지 않았고(46%), 리더와 동료를 신뢰하는 비율도 각각 49%로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평균적으로 절반 정도의 사람들은 회사와 동료와 리더를 신뢰하지 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뢰를 구성하는 요소들

그렇다면 신뢰는 무엇으로 구성될까요? 신뢰에 대해서는 수많은 연구가 이루어졌고, 다양한 모델들이 있지만 저는 Robert F. Hurly의 아티클을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Hurly는 2006년 9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기고한 <The Decision to Trust>에서 사회심리학자 Morton Deutsch의 연구를 기반으로 한 신뢰 예측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먼저 Hurly의 모델에서 신뢰는 총 10가지의 요소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 중 3가지는 신뢰를 하는 사람(truster)의 개인적인 특성이라고 볼 수 있고, 나머지 7가지는 신뢰를 받는 사람(trustee)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속성입니다. 신뢰자(truster)에게 고유한 3가지 속성은 위험 감수(Risk tolerance), 조절 수준(Level of adjustment), 상대적 권력(Relative power)으로, 이것은 신뢰를 받고자 하는 리더의 입장에서 상대적으로 조정하기가 어려운 요소입니다.

먼저 상호 관계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조정이나 변화를 주기 쉬운 7가지 속성을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첫 번째는 안정성(Security)입니다. “신뢰하는 사람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안정적인가?”라는 질문으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만약 조직에서 최근 대규모의 정리해고가 있었다면 신뢰를 주는 사람들, 즉 구성원들의 입장에서는 안정성이 낮다고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은 유사성의 수(Number of similarities)입니다. 이것은 “상대방이 나와 얼마나 비슷한 점이 많은가?”라는 질문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유사성이 높을수록 신뢰가 높아지기 때문에 조직문화를 강력하게 유지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비슷하게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기 때문에, 많을수록 더 강력한 신뢰가 형성됩니다.

세 번째는 이해관계의 일치(Alignment of interests)입니다. 이것은 “상대방의 이익과 나의 이익이 얼마나 일치하는지?”와 관련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조직에서 리더가 명백히 특정한 구성원에게 이익이 되는 결정을 계속 내린다면, 다른 구성원들은 리더의 이해관계가 자신과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당연히 신뢰 수준도 낮아집니다.

네 번째는 우호적 관심(Benevolent concern)입니다. 이것은 신뢰받는 사람이 나의 이익을 위해서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지와 관련이 있습니다. 만약 리더가 구성원의 이익을 위해, 혹은 구성원을 위험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고 행동한다면 자연스럽게 신뢰가 형성될 것입니다. 반대로 리더가 나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고, 나의 이익이나 안위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면 당연히 나 역시 리더를 신뢰하지 못할 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능력(Capability)입니다. 리더와 구성원의 관계에서 능력은 곧 실무적인 전문성, 성과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능력은 특히 성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직에서는 매우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리더는 자신이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구성원들에게 보여주어야 충분히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여섯 번째는 예측 가능성과 완결성(Predictability and integrity)입니다. 이것은 쉽게 말해서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리더가 돌발적인 행동을 하기보다는 예측할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자신이 약속한 대로 행동한다면 신뢰가 높아집니다.

일곱 번째는 소통의 수준(Level of communication)입니다. 소통이 원활한 경우 신뢰를 뒷받침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리더와 구성원의 관계에서 소통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리더의 생각을 구성원들이 알기 어렵다면 당연히 신뢰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면 개인적인 속성에 해당하는 3가지 요소를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위험 감수 성향(Risk tolerance)입니다. 우리 각각은 타고난 위험 감수 성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위험한 도박을 선호하고, 어떤 사람들은 안정적인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위험성을 감수하는 성향이 높을수록, 신뢰받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관계없이 신뢰를 보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조절 수준(Level of adjustment)입니다. 조절 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감이 높고 세상을 낙관적으로 보기 때문에 더 쉽게 신뢰를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상대적인 권력(Relative power)은 신뢰를 하는 사람의 권력의 크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만약 신뢰를 하는 사람(trustee), 즉 구성원의 권력이 크다면 상대방이 신뢰를 위반했을 때 제재할 수 있기 때문에 신뢰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에는 더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는 이러한 모든 요소를 다 고려해야 할까요? Hurly는 신뢰를 높이는 최우선 요소로서 예측 가능성과 완결성(Predictability and integrity)을 꼽습니다. 쉽게 말해서, 리더는 자기가 말한 것을 지키기만 하더라도 신뢰가 높아진다는 것이죠. 따라서 리더로서 신뢰를 얻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할 일은 구성원들이 필요로 하는 변화를 확인하고, 그것을 약속하고 지키는 것입니다. 예측 가능성과 완결성 다음으로 중요한 요소는 능력이며, 세 번째로 중요한 요소는 소통의 수준이었습니다. 우선 이 세 가지 요소가 현재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고 개선할 수 있다면 신뢰 또한 빠르게 획득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팀을 신뢰하고, 팀원들이 서로 신뢰하도록 돕기

앞서 살펴본 것처럼 리더로서 신뢰를 얻는 방법의 핵심은 결국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J. Appelo는 애자일 조직에서의 리더십을 다룬 저서 Management 3.0에서 리더로서 신뢰를 얻는 것뿐만 아니라 리더로서 팀을 신뢰하는 것, 그리고 팀원들이 서로 신뢰하도록 돕는 두 가지 차원을 추가로 제시합니다(Appelo, 2019).

구성원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리더로서 팀을 신뢰해야 합니다. Appelo는 자율적인 팀이 리더에게 문제에 대한 결정을 요청하면,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팀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행위는 신뢰 모델에서 상대적인 힘을 높여 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리더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구성원들이 서로 신뢰하도록 하기 위해서 Appelo는 3가지 방법을 제시합니다. 먼저 팀원 사이의 소통(Level of communication)의 대역폭을 늘리고 품질을 높이는 것입니다. 일일 스탠드업 회의, 가까운 거리에 앉도록 하기, 함께 식사하기 등의 행동은 팀원들 사이의 소통을 높여줍니다.

다음으로 구성원들이 서로 약속한 것을 실행할 수 있도록 리더로서 도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전문성이나 기술 수준이 낮은 팀원의 경우에는 도움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한편 누군가가 약속한 것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면, 그것을 더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Appelo는 리더가 스스로를 신뢰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즉, 먼저 자신을 신뢰해야 다른 사람을 신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리더는 다른 사람들과 의견이 다르더라도 스스로의 이성과 상식을 믿고 그것에 충실해야 합니다. 믿지 않는 뭔가를 하는 것은 스스로의 신뢰에 반하는 행동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신뢰를 구성하는 모델과 더불어 조직 내에서 신뢰를 높이는 방법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았습니다. 주로 리더의 관점에서 보았지만, 구성원의 입장에서 자신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방법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문화적인 측면에서 보면 조직에서 표방하는 가치와 실제 조직의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사례가 이어질 때, 구성원들이 조직문화에 대한 신뢰 자체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예를 들어 만약 조직에서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질문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문화를 만들고자 한다면, 실제로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조직에서 존중과 인정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승진자 명단에는 예스맨으로 잘 알려진 사람들로 가득하다면, 구성원들은 그 어떤 조직문화 캠페인보다도 더 예민하게 이러한 불일치성에 주목할 것입니다.

위에서 다룬 신뢰 모델을 기반으로 리더로서, 동료로서, 혹은 조직에 대해 신뢰 수준을 점검해 보시고, 상호 신뢰를 높이기 위해 우리 조직에서는 어떤 것들이 더 필요한지 함께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셨으면 합니다. 적어도 절반 이상의 구성원들이 조직과 리더와 동료를 더 신뢰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참고문헌

양민경 (2018. 9). 직장인 50%, “회사, 상사, 팀 신뢰하지 않는다”. HR 블레틴. retrieved from https://hrbulletin.net/leadership/%EC%A1%B0%EC%A7%81-%EC%83%81%EC%82%AC-%ED%8C%80%EC%9D%84-%EC%8B%A0%EB%A2%B0%ED%95%98%EB%8A%94-%EC%A1%B0%EC%A7%81%EC%9B%90%EC%9D%80-%EC%A0%88%EB%B0%98%EB%8F%84-%EB%90%98%EC%A7%80-%EC%95%8A%EB%8A%94/

Robert, F. H. (2006. 9). The Decision to Trust. Harvard Business Reivew. retrieved from https://hbr.org/2006/09/the-decision-to-trust

Appelo, J. (2019). MANAGEMENT 3.0. 조승빈 (번역). 서울: 에이콘.

Appelo, J. (2020). 매니지먼트 3.0 – 모두가 행복한 애자일 매니지먼트. 조승빈 (번역). 서울: 에이콘.